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레페의 앤 (문단 편집) === [[이혼]]과 무효화 === 결국 헨리 8세와 앤은 합의하에 결혼을 무효화했다. 그 시절 [[유럽]]에서는 부부가 [[성관계]]를 갖지 않으면 결혼이 성립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으므로, 결혼 무효화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. 처음에 앤은 이혼하자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다. 그 무렵 앤은 영어도 막 익혀가고 있었고 서서히 사람들 사이에서 신망을 얻는 등 나름대로 잉글랜드의 왕비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. 그래서 처음에는 율리히-클레베-베르크 공국의 대사와 변호사를 동원하여 결혼 무효화에 맞서려고 했지만 곧 마음을 바꾸었다. 이미 첫 번째 부인은 내쫓고 두 번째 부인의 목을 벤 전력이 있는 남편과 대치해봤자 별 소용이 없었고 "님도 캐서린 왕비 꼴 나보고 싶으시다면야..."라는 은근한 충고에다 친정인 클레페 공국의 상황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. 당시 앤의 남동생 클레페 공작 빌헬름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[[카를 5세]]에게 맞서다가, 자신의 영지가 쑥대밭이 되고 제국추방령이 내려진 상태였던지라 돌아갈 곳도 없었다. 클레베 공작령은 영토는 좁지만 매우 부유한 영지였고 [[합스부르크 가문]]의 저지대 영지와 연결된 터라 눈독 들이다가 뺏은 격. 결국 클레베 공작 빌헬름은 카를 5세에게 [[독일]]지역의 일부 영토를 돌려 받고 [[네덜란드]] 지역은 완전히 뺏겼다. 대신 그 보상으로 빌헬름은 카를 5세의 조카 오스트리아의 마리아[* 카를 5세의 동생이자 당시 [[신성 로마 제국]]의 차기 황제였던 로마왕 [[페르디난트 1세]]의 3녀.]와 결혼했다. 한편 [[토머스 크롬웰]]은 이 결혼을 주선한 죄로 결정적으로 몰락하고 처형당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